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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세포에서 우주까지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차전지 소재·부품·장비·리사이클링 컨퍼런스 ‘배터리 코리아(BATTERY KOREA) 2024’ 참관객들이 리튬이온 배터리 제조 공정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조선의 역사를 보다 보면 아마 한 번쯤은 누구나 인천우리캐피탈 머릿속에 떠올려 볼 만한 주제가 “어떻게 했다면 조선이 멸망을 피할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 아닐까 싶다. 그런데 조선 후기의 학자인 박제가가 남긴 ‘병오소회(丙午所懷)’라는 글을 읽다 보면, 문득 “이 사람 말대로 했다면 조선을 구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글의 제목이 ‘병오소회’인 까닭은 병오년 유학자금 대출 인 1786년 임금인 정조가 신하들에게 각종 건의 사항과 의견을 제출하라고 했을 때 박제가가 써낸 글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박제가는 특이하게도 이때 자신이 쓴 책, 『북학의』의 내용을 요약한 아주 긴 글을 써서 냈다. 그런 일을 한 이유는 그만큼 자신이 쓴 책의 내용이 귀중하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고 또한 그 책 내용대로 하지 않으면 나라를 구할 주택금융공사전세보증 수 없다는 절박함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선교사 적극 수용, 유럽 과학 기술 배워야” 특이한 사연의 글인 만큼 그 내용에도 놀라운 대목이 많다. 돈 버는 일이라면 대개 치졸하고 경박한 것으로 생각하던 조선 시대에 상업의 발전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무척이나 강조해서 길게 써두기도 했고, 유럽에서 온 천주교 선교사들을 적극적으로 조선에 신용회복위원회 불러 들여서 그들로부터 유럽의 과학 기술을 능동적으로 배우자는 과감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불과 5년 후인 1791년에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상당한 규모의 처벌 사건인 신해박해가 발생했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박제가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에서 온 사람 같은 주장을 하는 느낌이다.
그가 ‘병오소회’에서 남긴 주장 중에서도 지금도 종 농협캐피탈 김태영 종 그대로 인용될 만한 구절을 하나 소개해 보자면 “다른 나라는 사치로 망한다고 하지만 우리 조선은 검소함으로 쇠퇴합니다”라는 내용을 꼽아 보고 싶다. 언뜻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 지적은 현대의 케인스주의 경제학에서 이야기 하는 ‘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과 바로 통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가 쓴 『북학의』. 성리학에서 강조하던 상업 억제 정책을 반대하며 적극적인 상업 장려와 그 바탕이 되는 생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앙포토]







절약의 역설은 불경기 시대에 개인이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소비를 줄이고 저축에 몰두할 때 발생하는 문제를 지적한다. 불경기가 계속되면 내 일자리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그런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저축을 늘인다는 것은 개인의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들 이런 식으로 소비를 줄이고 돈을 쓰지 않는다면 그만큼 물건이 팔리지 않아 기업들의 사정은 더욱 나빠지고 불경기는 더 심해진다. 만약 불경기가 심해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더욱 소비를 줄이면 그에 따라 경기는 더욱 더 심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케인스주의라고 하면 아마 정부에서 돈을 풀어서 일자리를 만드는 정책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박제가는 ‘병오소회’에서 양반들도 상인이 될 수 있도록 정부 지원으로 키워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심지어 그는 새로 상업에 종사하는 양반들에게 정부가 밑천과 가게 자리를 지원해 주어야 한다고까지 이야기했는데, 이런 내용은 현재의 창업 지원 정책과 별다를 바 없어 보일 정도다. 이렇게 보면 절약의 역설과 박제가의 시각은 더욱 더 유사해 보인다. 박제가는 “검소함으로 쇠퇴한다”는 말을 ‘이검이쇠(以儉以衰)’라고 썼는데, 그렇다면 이검이쇠가 박제가 버전의 ‘절약의 역설’이라 할만하다.
게다가 박제가가 설명한 “검소함으로 쇠퇴한다”는 주장에는 기술 혁신에 대한 다른 통찰이 더 담겨 있다. 그는 일견 사소하고 불필요해 보이는 소비도 전반적인 기술 발전을 이끌 수 있어서 나중에는 꼭 필요한 산업 발전과 연결되기도 하므로 같이 키워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 짓는 기술에 대해 생각해 보자. 조선의 선비 문화에서는 누추하고 허름한 집에서 가난을 견디며 사는 것이 미덕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굳이 크고 아름다운 집을 지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는 뛰어난 기술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돈을 벌 방법이 없다. 그러니 기술자들은 그냥 질이 떨어지는 싸구려 건물을 싼 값에 짓기 위해서만 노력할 뿐이다. 견고하고 튼튼한 건물, 크고 훌륭한 건물을 짓기 위한 기술은 개발되지 않는다.









『북학의』 저자 박제가의 초상화. 청나라 화가 나빙이 그렸다. [중앙포토]







결국 이런 식으로 가면 나중에는 성벽을 잘 쌓기 위한 기술, 튼튼하게 성문을 만들고 보루를 만들 수 있는 기술도 개발되지 못한다. 그런 기술에 익숙한 과학기술인들이 나라에 생겨날 수도 없다. 이러면 전쟁이 벌어졌을 때 조선은 힘 없이 패배하게 된다. 사람들이 아름다운 집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 것은 검소한 문화니 좋아 보일 수 있지만, 결국 그 탓에 성벽도 쉽게 무너진다. 박제가는 이것이 조선의 국력이 뒤떨어지고 다른 나라들이 조선 보다 빠르게 발전하는 이유라고 밝혀 썼다.

이와 유사한 기술 혁신 사례는 현대에도 얼마든지 살펴 볼 수 있다. 최근 인공지능 개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품이라는 GPU는 대표적인 예시다. GPU는 그래픽 처리 장치(graphic processing unit)라는 말의 약자인 만큼 본래 CG를 빠르고 부드럽게 처리하기 위한 용도로 개발된 부품이었다. 그러므로 1990년대에 처음 GPU라는 이름이 붙은 제품이 나왔을 때, 이 제품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대부분 더 화려한 컴퓨터 게임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다.
최초로 GPU라는 이름을 쓴 제품인 엔비디아의 GeForce256 가 1999년 출시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이 제품에 대해 평가하는 사람들은 이 제품을 사용하면 ‘퀘이크’ 시리즈 같은 컴퓨터 게임이 잘 돌아간다는 점을 이야기할 뿐이었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이런 제품을 인공지능 용도로 활용할 수 있을 거라고 잘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혁신이 일어나고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어느 새 GPU는 인공지능 산업의 핵심이 되었다. 만약 사람들이 “생산적이지도 않은 컴퓨터 게임을 위한 사업에 왜 나서서 투자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면 이 모든 혁신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게임·음악 위한 연구·개발, AI 비약 이끌어 더 눈에 뜨이는 사례로는 2차 전지 사업도 있다. 전기 자동차가 미래 자동차 산업을 뒤흔들 만한 저력을 갖게 된 이유는 리튬이온 배터리라고 하는 효율이 뛰어난 2차 전지가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가볍고 오래 가는 2차 전지가 없었다면, 실용적인 전기 자동차가 대중화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기후변화 문제와 함께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 에너지와 리튬이온 배터리 산업이 연결되는 경향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재생 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리튬이온 배터리에 저장해 두었다가 사용하면 극적으로 효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리튬이온 배터리는 기후 변화로부터 지구를 구하겠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영웅들이 개발한 제품이 아니다. 리튬이온 배터리를 처음 개발하고 활용한 사람들은 1990년대의 전자제품 개발사들이었다. 당시에는 카세트 테이프나 CD 등에 담긴 음악을 들으면서 다닐 수 있는 휴대용 기기들이 인기가 많았다. 특히 청소년들 사이에 수요가 많았다. 이런 제품을 잘 만들어 경쟁에 이기려면 더 오래가고 가벼운 전지가 있어야 했다. 바로 그 때문에 일본 전자회사들이 세계 최초로 리튬이온 배터리를 개발했다.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리튬이온 배터리를 양산한 나라는 한국인데, 그것도 그 당시 한국이 전자산업에서 일본과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리튬이온 배터리라는 제품으로 전기 자동차, 재생 에너지를 확대해 지구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준 것은 아이돌 음악을 즐겨 듣던 1990년대의 청소년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 산업이 한국의 미래 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들 덕택이다.
그렇기에 나는 미래의 기술 혁신을 위해서는 그저 높은 사람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일을 하도록 엄격하게 지휘하는 일보다는 좀 더 느슨하게 다양한 시도와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받쳐주는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연구 결과가 다양한 영역으로 넓은 영향을 퍼뜨릴 수 있도록 장벽과 문턱을 없애기 위한 노력이 꼭 같이 곁들여져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239년 전 박제가 때부터 알고 있었던 미래를 개척하는 방법이다. 조선 시대에는 그의 말을 이해하고 실천할 사람들이 없었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 뜻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곽재식 작가·숭실사이버대 교수. 공상과학(SF) 소설가이자 과학자. 과학과 사회·역사·문화를 연결짓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괴물 백과』 『곽재식의 세균 박람회』 등을 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원자력 및 양자공학·화학을 전공, 연세대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