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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네소타주에 위치한 콩코디아 언어마을(CLV, Concordia Language Villages)은 15개국 마을이 각국의 언어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5개국이 모두 제 집을 가진 것은 아니다. 불과 1년 전까지는 한국어 마을 ‘숲 속의 호수’도 그랬다. 러시아 마을 건물을 빌려 썼다. 지금다빈치릴게임
은 다르다. 지난해 말 한국어 마을 캠퍼스가 새로 지어졌다. 한국 건축의 걸작인 종묘를 떠올리게 하는 이 건물은 박은관 시몬느 회장이 무려 100억원 넘게 기부한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다. 한국어 마을 건물은 이미 CLV 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다. 이제는 이탈리아 마을에 시설을 빌려 줄 정도다.
지난 5월 15일 ‘세종 나신 날’로 옮겨 알라딘릴게임오락실
처음으로 시상하는 세종문화상 대통령 표창을 박 회장이 받았다. 한국어 마을 전용 교육시설 건립을 지원해 한국어·한국문화의 세계 확산에 기여한 공로다. 세종문화상에는 한국어·한글 부문도 있지만 박 회장이 수상한 부문은 문화교류협력과 세계화다. 높아진 한국어 마을의 위상은 한글과 한국어를 넘어 한국문화 전반의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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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몬느를 통해 세계 명품 가방 시장에서 한국의 솜씨를 입증한 박 회장은 회사 밖에서 한국의 또다른 저력을 전세계에 알리고 있다. 지난 20일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시몬느 오피스 캠퍼스에서 박 회장을 만나 나눔을 통한 우리말, 우리글, 우리 문화 사랑의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미국에 한글, 한옥, 한국을 세우다…한국어 마을 ‘숲 속거래량이동평균선
의 호수’
박 회장이 2008년 한 라디오 방송을 듣고 한국어 마을과 인연을 맺은 일화는 이제 꽤 유명하다. 미국인들이 주도해 만든 한국어 마을에 감명을 받아 지원을 시작했지만 100억원이 넘는 돈을 한국어 마을 시설 건립에 기부하기까지는 또다른 과정이 있다.
“2008년 한국인 마을을 만든 로스 킹 교수와 첫 만남 이후릴게임 종류
소액으로 시작해 조금씩 지원을 늘려갔죠. 2017년 쯤 한국어 마을 간부들이 한국에 왔어요. 함께 식사를 하다 교육시설 건립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줬어요. 당시에 이미 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대학이 142곳이나 되고, 다른 외국어와 달리 유일하게 지원 학생이 급증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K-팝 가사, K-드라마 대사에서 시작해 한국어와 한국문화, 역사까지 관심을 갖게 된 거죠. 한국어에 대한 관심은 커지는데 초중고 수준에서 배울 기관이 없다는 거에요. 그래서 ‘숲 속의 호수’ 프로그램 신청이 쇄도하는데 자체 교육시설이 없어 러시아 마을을 빌려 쓰다보니 수용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안타까워했어요. 얘기 듣고 바로 건물 짓는데 500만 달러 지원을 약속했어요”
이후 매칭 펀드(matching fund) 형태의 지원까지 추가돼 17년 간 박 회장이 한국어 마을에 기부한 액수는 750만 달러에 달한다. 심지어 이 가운데 절반은 사재다.
한국어 마을은 한옥을 기반으로 유병안 건축가가 설계했다. 문제는 시공이었다. 미국에는 한옥을 지어 본 기술자가 없었다. 유 건축가는 미국 기술자들을 한국으로 데리고 와 종묘를 비롯한 대표적 한옥 건물들을 견학하도록 했다. 미국 기술자들의 한옥 공부다. 경험과 배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박 회장의 한국어 마을 지원이 한옥 건축술의 북미 진출로도 이어졌다고 할 만하다.
우리말의 가치를 다시 빛내다… 번역과 핸드백 용어사전
박 회장이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기여한 공로로 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0년 한글날 경축식에서 한글 발전 유공자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한글과 한국문학, 인문학에 25년 넘게(당시 기준) 보이지 않는 지원을 이어온 공로다.
연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한 박 회장은 1990년대 중반부터 한독문학번역연구소와 모교의 장학사업에 기부를 해왔다. 독일은 철학과 문학의 강국이지만 국내 독일 서적 중에는 일본어나 영어를 다시 한글로 번역한 경우가 많다. 지원이 절실했다. 박 회장의 지원은 묵직하고 꾸준했다. 이후 한독문학번역상은 ‘시몬느 번역상’이란 새 이름으로 거듭나게 된다. 번역은 박 회장의 나눔에서 중요한 분야다.
2013년 모교에서 교수를 하는 후배들을 만난 자리에서 박 회장은 새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핸드백 용어사전이다. 시몬느는 1990년대부터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서 가방을 생산했다. 한국직원들이 현지 직원을 교육했는데 박 회장은 어느 날 이상한 걸 깨닫게 된다.
“당연히 한국말로 가르치는 줄 알았죠. 들어보니 일본 말이었어요. 당시 봉제 용어들이 대부분 일본어였어요. 저도 그렇게 배웠죠. 이건 아니다 싶었죠. 바꿔야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실행을 못했어요. 마침 후배들이 평소 학교 많이 도와줘 고맙다며 뭔가 자신들이 할 게 없을까 물어오길래 시작하자고 말했죠”
박 회장은 연세대 교수진과 조교, 직원들로 40여명 규모의 태스크포스를 꾸린다. 비용은 박 회장이 거의 다 댔다. 사전을 만드는 일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3년 반의 노력 끝에 일본 말 일색의 봉제 용어들이 바르고 고운 우리 말로 바뀌었다.
사전은 중국어, 캄보디아어, 베트남어, 인도네시아어, 영어로도 번역됐고, 전세계 유명 브랜드에서부터 중국의 이름 없는 조그만 제작사까지 퍼져나갔다. 에르메스, 샤넬 등 세계 최고의 명품 브랜드들도 구입했다. 박 회장이 작심하고 보급에 나선 덕분이지만 내용도 워낙에 훌륭했다. 용어사전이지만 봉제의 기본 기술도 상세히 설명했다. 이 사전은 이제 전세계에서 가방 봉제는 물론 가죽 공예를 하는 이들에게도 종합교과서가 됐다. 외래 용어의 한글화는 다른 업종들도 시도했지만 성과가 미미했다. 핸드백용어사전은 한글화를 넘어 세계화까지 이룬 유일무이한 업적이다. 겸손한 박 회장이지만 핸드백 용어사전만큼은 그 가치를 자부한다.
“지금도 당시 핸드백용어사전 만든 게 제일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 회장의 한글 사랑은 부전여전(父傳女傳)이 됐다. 시몬느는 2015년 처음으로 자체 브랜드 ‘0914’를 내놓는다. 2017년의 어느 날 둘째 딸이 ‘0914’를 읽는 법에 문제를 제기했다.
“왜 원·나인·원·포라고 해요? 미국이 문화적인 영향력도 커서 (저도) 가서 공부했지만 지금은 한국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요. 이제 외국 사람들도 우리 말 배우도록 해야하는데 왜 우리 브랜드까지 (굳이) 영어로 읽어요?”
이 때부터 영어로 숫자를 읽던 ‘0914’는 ‘GONGUILSA’로 새롭게 태어난다.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려라…남다른 박은관 문학상
박 회장의 우리말 우리글 사랑 행진은 이후에 문학으로 확대된다. 2018년 연세대에 윤동주 기념관 건립 기금 25억원을 기탁한 데 이어 2022년에는 연세대에 다시 50억원을 기부해 이 중 절반을 인문학 발전에 쓰이도록 했다. 2023년에는 새로운 개념의 ‘연세-박은관 문학상’을 만든다. 총상금 1억원인 이 상은 매년 한 작품만 선정한다.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작품 계획으로 뽑는다. 선정이되면 상금과 창작지원금을 먼저 지급해 작가가 작품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특히 작품이 완성된 이후에는 번역과 출판, 마케팅까지 지원한다. 지난 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번역의 중요성이 부각됐지만, 그 보다 앞서 문학상에 이를 반영했던 셈이다.
“우리나라가 대중문화는 글로벌 인플루언서와 크리에이터를 배출하고 있어요. 그림이나 음악도 대중문화처럼 활성화는 안됐지만 글로벌 무대에서 최상위 수준이죠. 발레만 해도 수준이 굉장히 높아졌어요. 문학은 어떤가요? 지난 해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아서 정말 잘됐지만, 일본과 중국은 이미 두 번씩이나 받았어요. 우리나라의 작가 역량이 부족해서 일까요? 아니에요. 한국 문학은 다른 예술에 비해서 투자와 홍보가 부족해요. 그래서 상을 만들 때 번역도 제대로 해서 홍보까지 잘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어요”
한국문화·콘텐츠의 세계화…인문학에서부터 시작하라
박 회장은 왜 우리 글과 문화, 인문학에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일까? 그는 인문학이 기반이 됐을 때에만 높은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15년 전만 해도 패션 브랜드의 뿌리는 파리, 런던, 피렌체나 밀라노, 뉴욕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어요. 문화적 성숙도에서 이들 도시가 앞섰기 때문이죠. 지금은 어떤가요? 아시아에서 패션은 도쿄가 한때 최고였죠. 이제는 아니에요. 지금은 아시아 패션 시계를 얘기할 때 상해가 10시, 서울이 12시, 도쿄가 오후 3시라고 해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가 서울에 뿌리를 둬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세계적인 패션 디자인학교를 가보면 25%가 한국 사람이에요. 우리나라의 정체성과 문화적 성숙도가 이렇게 높이 올라와 있지만 해외에 전달이 잘 안되요. 문화라는 건 말과 글로 소통이 되는데 결국 한국어와 인문학적 수준이 기반이 돼야 해요”
박 회장은 다행히 한국 기업들의 미국 진출이 늘어나면서 북미에도 한국어와 한국문화 전파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장을 지으면 현지 커뮤니티와 좋은 관계도 만들어야 하는 데 한국어와 한국문화가 가장 자연스러운 매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박 회장은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문학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시몬느가 창립 이래 만든 디자인만 30만개에 달한다. 지금도 매년 6000개 이상의 새로운 디자인을 만든다. 같은 것은 물론 비슷한 디자인 조차 용납되지 않는다. 솜씨와 함께 독창성과 창의력이 중요하다.
2003년 국내 최초로 오피스 캠퍼스 개념을 도입한 본사 건물을 의왕이 지은 이유도 직원들의 창의성을 북돋기 위해서다. 업무·연구·공장 기능이 친환경과 어우러진 시몬느 캠퍼스는 2003년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대통령상(설계자 안길원 건축사)과 국무총리상(시공자 A&A건설, 건축주 ㈜시몬느)을 수상한다.
“어느 나라건 명문대라면 법대 의대 등이 다 있지요? 그런데 미국에서도 명문으로 손꼽히는 프린스턴대학은 학부에 그런 과가 없어요. 미국 친구들한테 이유를 물어보니 대부분 같은 답을 하더군요. 다른 학문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법학을 하던 의학을 하던 인문학적인 기반을 4년간 쌓은 후에 해야 한다는 거죠. 인문학은 어떤 일을 하던 가장 큰 밑천이고 거름이죠”
배움, 이룸 그리고 나눔…나눌 수록 더 커진다
인문학에서 배우고, 솜씨로 이룬 박 회장은 요즘 나눔에 더 열심이다. 나눔을 통해 배움과 이룸을 이는 다시 나눔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나눔에서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기부자 중심(donor-centered)이다. 기부자를 중심에 두고 그들의 경험, 동기, 기대, 요구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눔을 확산시키려면 나누는 이도 나눔을 받는 이도 보람을 느끼고 가치를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 대학이나 기관이 잘하는 게 기부자 중심이죠. 기부자가 연속성을 갖고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게 피드백을 진짜 잘해요. 작은 기부라도 어디에 쓰였는지 자세히 알려주는 거죠. 장학금 받은 아이가 보내주는 감사 글도 그 중 일부죠. 미국 대학에 기부하며 아프리카 학생을 도와준 적이 있는데 ‘새로운 나라 문화의 언어를 접하면서 세계 시민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저도 박 선생님처럼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다른 청소년한테 이 기회를 꼭 물려줄 것을 약속 드려요’라는 글을 보내왔어요. 정말 가슴에 와닿더라구요”
박 회장은 배움과 이룸, 그리고 나눔을 살면서 거쳐야 하는 세 단계로 설명했다.
“어렸을 때는 많이 배우고, 그 배움을 통해 성숙해 이루는 단계가 되면, 그 다음에는 반드시 주변과 사회에 베풀어야 합니다. 그런 인생이 멋진 삶이죠. 개인 뿐 아니라 기업도 마찬가지죠”
홍길용 기자